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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 (역사왜곡, 팩션, 단종비극)

by 다둥이맘5 2026. 5. 15.

역사 영화를 볼 때마다 드는 의심이 있습니다. "이게 실제로 그랬던 걸까, 아니면 감동을 위해 만들어진 걸까?" 저도 영화관을 나오면서 그 두 감정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장항준 감독의 신작 왕과 사는 남자, 분명히 울었는데 집에 오는 길에 자꾸 찜찜했습니다. 그 찜찜함의 정체를 정리해 보려 합니다.

역사왜곡: 팩션이라는 방패가 가리는 것

일반적으로 팩션(faction) 장르는 역사적 사실에 창작을 더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팩션이란 'fact(사실)'와 'fiction(허구)'의 합성어로, 실존 인물이나 사건을 뼈대로 삼되 세부 서사는 창작으로 채우는 장르적 관습을 뜻합니다. 문제는 이 팩션이라는 방패가 얼마나 넓은 범위까지 역사적 왜곡을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왕과 사는 남자는 실제로 존재했던 엄흥도라는 인물을 크게 재해석합니다. 실록과 야사에 따르면 엄흥도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지, 단종의 유배지를 유치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인물은 아닙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장면은 바로 이 설정이었습니다. 마을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유치하려 한다는 도입부 자체가 이미 허구의 비중이 상당히 크기 때문입니다.

역사학계에서는 이러한 방식을 역사적 맥락 탈각(脫殼)이라는 표현으로 비판하기도 합니다. 역사적 맥락 탈각이란 실제 사건의 정치적·사회적 배경을 걷어내고, 개인의 감정 서사로만 역사를 재구성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계유정난이라는 권력의 폭력성, 세조와 한명회의 조직적인 숙청은 이 영화 안에서 감동적인 인간 드라마의 배경으로 소비될 위험이 있습니다. 픽션이라는 이름 아래 서늘한 진실이 따뜻하게 덧칠된다면, 관객은 역사의 온도를 실제보다 낮게 느끼게 됩니다.

팩션: 장항준 감독의 상상력이 빛나는 지점과 아쉬운 지점

팩션 장르가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기록이 지워진 역사의 빈틈을 상상력으로 채우는 작업은 분명 의미가 있고, 장항준 감독이 이번 영화에서 선택한 몇 가지 장치는 꽤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특히 청령포(淸泠浦)의 공간 설계는 제 경험상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출이었습니다. 청령포는 삼면이 서강으로 둘러싸이고 절벽이 막고 있는, 육지 안의 섬 구조입니다. 영화는 이 고립된 지형을 단순한 배경으로 두지 않고 이홍이의 심리 상태를 시각화하는 미장센(mise-en-scène)으로 활용합니다. 여기서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우의 위치·조명·공간 구성 등을 통해 감정과 주제를 전달하는 영화적 기법을 말합니다. 절경에 가까운 풍광과 탈출 불가능한 고립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 공간은, 아름다움 속에 갇힌 단종의 처지를 말 없이 보여줍니다.

하지만 장항준 감독이 상상력을 가장 과감하게 쓴 부분, 즉 엄흥도가 단종의 죽음을 직접 돕는 결말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야사를 각색한 것이라 해도, 역사적 희생자의 마지막을 '숭고한 동반자의 도움'으로 마무리 짓는 것은 참혹한 정치적 살인을 개인적 서사의 감동으로 희석할 위험이 있습니다. 역사 속 단종의 죽음과 관련된 기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조선왕조실록에는 단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 야사에는 하인이 활줄로 단종의 죽음을 도왔다는 설이 전해집니다.
  • 사약을 내렸다는 설도 함께 전해지며, 사인에 대해 현재까지 복수의 설이 공존합니다.

영화는 이 중 야사를 채택해 엄흥도 서사와 결합했습니다. 극적 완성도를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어떤 설을 선택하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역사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각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책임감 있는 선택이었는지는 여전히 물음표가 남습니다(출처: 조선왕조실록 원문 서비스, 국사편찬위원회).

단종비극: 감동 뒤에 지워진 정치적 폭력성

단종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반복적으로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바로 단종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낭만화하면서 정작 그 비극을 만들어낸 권력 구조의 잔혹성을 희석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 영화에서도 같은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유지태 배우가 연기한 한명회는 분명 강렬했습니다. 기존 미디어에서 음지의 설계자로 그려지던 한명회를 전면에 내세운 카리스마적 인물로 재해석한 것은 신선한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재해석이 오히려 역사적 가해자의 잔혹성보다 개인의 위압감에만 집중하게 만든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역사 속 한명회는 기개 있는 당당함보다 치밀한 모략으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인물입니다. 그를 '압도적인 빌런'으로 미학화하는 것이 과연 역사적 가해자에 대한 정직한 시선인지 되물어야 합니다.

박지훈 배우의 연기 자체는 이견이 없습니다. 분노를 응집시켜 내면에 가두는 연기는 단종이라는 인물의 무력감과 의지를 동시에 설득력 있게 전달했습니다. 다만 영화가 단종의 내면 변화를 '책임 있는 군주로서의 성장'으로 설계한 방향성에 대해서는 다르게 볼 여지가 있습니다. 실제 역사 속 단종은 17세의 나이에 사사(賜死)를 당한 소년이었습니다. 사사란 왕이나 권력자가 독약을 내려 죽이는 형벌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소년의 무력한 죽음을 '군주론적 서사'로 포장하는 것이 비극에 대한 더 진실된 예우인지는 솔직히 자신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의 연구에서도 역사 영화가 상업적 감동을 위해 역사적 사실을 과도하게 재구성할 경우, 관객의 역사 인식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비극 재현의 윤리: 역사를 다루는 영화가 가져야 할 책임

역사 영화가 감동을 주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감동이 역사적 비극의 날 것 그대로를 마주하게 하는 방식으로 얻어지는지, 아니면 역사를 따뜻하게 재단하는 방식으로 얻어지는지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왕과 사는 남자가 던지는 질문, "왕이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는 분명 가치 있는 물음입니다. 그리고 유해진 배우가 보여준 엄흥도의 울분에 찬 눈물은 저도 영화관에서 그냥 넘기지 못했습니다. 영화의 감동이 가짜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반드시 원래 역사,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단종의 이야기도 함께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팩션 장르에서 창작의 자유는 당연히 허용되어야 하지만, 관객으로서의 우리는 그 창작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까지 나아갔는지 스스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를 아는 것이 영화를 즐기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비극의 온도를 더 정확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참고: https://youtu.be/0DbQy1uHav8?si=79LJfVAaFlpkXHNA